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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을 부르는 보석 - 호프(Hope) 다이아몬드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4. 26. 07:16

호프 다이아몬드는 매우 진한 청색이면서도 휘광성이 높은 다이아몬드로서 "자색의 물 (Water of Violet) "이라고 칭해질 정도로 신비한 색을 가지고 있다.

이 호프 다이아몬드를 최초에 발견한 것은 인도 서북부의 어느 가난한 농부였고, 이 농부가 다이아몬드 발견했다는 소문은 온 마을에 삽시간에 퍼져 버렸다.

이 농부가 불행의 늪에 떨어지기 까지는 그다지 시간이 걸리지 않았는데, 그것은 페르시아 군대가 인도에 침입해 왔기 때문이다.

이 큰 다이아몬드의 소문은 당연하게 페르시아 군에도 알려져 군(軍)대장의 명령에 의해 이 다이아몬드는, 빼앗기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피를 흘리면서도 쥔 손을 풀지 않으며 반항하던 농부의 손에서 벗어나 페르시아군에게 넘겨지게 되며, 이 다이아몬드의 역사에서 첫 주인인 이 농부의 죽음이 결국 이 다이아몬드 소유자의 비극의 첫 출발점으로 기록된다.

이윽고 인도 원정에서 승리하고 개선한 페르시아군의 대장은 이 아름답고 신비한 청색의 다이아몬드를 페르시아 국왕인 샤제황에게 헌상하여, 이 다이아몬드가 한 농부의 손에서 페르시아 왕실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선량한 농부를 죽이면서 까지 이 다이아몬드를 뺏은 페르시아 군의 대장은 얼마안가 자식문제 때문에 자살하게 되었고, 국왕인 샤제황도 반역분자에게 살해되어 버려, 이것이 비극의 제2막이 되고 말았다.

프랑스의 대여행가이며 17세기경 동양을 6회씩이나 여행함으로서 보석등의 무역으로 거부(巨富)가 된 타베르니에는 여행중에 각지의 왕궁을 방문하면서 장사를 하였다.

그는 1640년경 무갈제국의 왕궁에서 당시 절대의 권력을 가진 무갈제국의 제6대 황제인 아우랑그제이브와 만나고 있었는데, 이 황제는 타베르니에에게 왕궁내의 많은 보석을 보여주었다.

이 많은 보석 가운데 나딜.샤가 코이누르라고 명명했던 그 멋진 다이아몬드외에 청색으로 슬픈 눈물의 덩어리와 같은 색을 띈 신비한 청색 다이아몬드가 있었다는 것을 그의 여행 기록중에 남겨 놓았다.

타베르니에가 방문했던 당시의 무갈 제국은 그 재배권이 사상 최대로 전성기를 맞이 했으나, 이 아우랑그제이브 황제의 말년기에는 쇄운의 기미를 보이기 시작해 반란이 끊이지 않았고 급속히 멸망의 길을 걷고 있었다.

1668년 타베르니에가 여섯 번째의 동양의 여행으로부터 프랑스 본국으로 귀국했을 때 그가 가지고 온 많은 보석들 중 25개의 아름다운 다이아몬드를 "태양왕"이라 불리우던 당시의 임금 루이 14세에게 선물하였는데, 그 중에 이 블루 다이아몬드의 원석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매우 기뻐한 루이 14세는 타베르니에를 귀족의 신분으로 바꾸어 주고 10만 파운드의 금화까지 선물하였다.

이 막대한 돈으로 거대한 집을 사서 일생을 안락하게 보내고자 했던 타베르니에도 자식 문제로 전 재산을 잃고, 다시 노구의 몸을 끌고 긴 여행을 출발했으나 모스크바 방문시 병에 걸려 84세의 나이로 세상을 하직하게 되어, 세번째 비극의 주인공으로 역사에 기록되게 되었다.

그리고 루이 14세의 명령에 의해 이 청색 다이아몬드는 1673년 69.03캐럿의 하트 형태의 브릴리언트 컷트로 연마되어 프랑스 왕관에 장식되었고, 이 왕관을 쓰고 황제가 된 루이 16세도 반란으로 1793년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버려 네번째 비극의 주인공이 된다.

프랑스 혁명 후 이 다이아몬드는 일시 모습을 감추었으나 30년후인 1830년경 44.5캐럿으로 다시 연마되어 세상에 모습을 나타내었는데, 아마도 프랑스 혁명의 혼란기에 도난당해 재연마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이 다이아몬드가 다시 세상에 등장했을 때 당시 보석 취급자로서 매우 유명했던 데이비드 에리아손이라는 인물이 소유하고 있었는데, 에리아손은 개인적인 이유로 이 다이아몬드를 런던의 유명한 보석 수집가인 토마스 호프에게 매매하였고, 토마스 호프가 자신의 이름을 따서 호프 다이아몬드라 명명하게 되었다.

슬픈 청색을 한 이 다이아몬드를 토마스 호프에게 팔아넘겼던 데이비드 에리아손은 곧바로 낙마(落馬)사고로 급사(急死)하여 다섯번째 비극의 주인공으로 역사에 기록되게 되었다.

이어서 대은행가로서 거부(巨富)로 통하던 호프집안의 재산도 한순간에 날라가 버려 결국 여섯번째 비극의 주인공이 되버리게 되자, 세상 사람들은 이 호프 다이아몬드만 소유하게 되면 사망, 또는 멸망하는 것으로 인식되게 되었고, 결국 불행을 부르는 다이아몬드라는 "닉 네임"을 가지게 되었다.

결국 인도의 한시골에서 최초에 발견된 것과 동시에 페르시아군에 짓밟힌 한 가난한 농부로부터 시작해서 피를 뿌린 이 다이아몬드에는 죽음을 부르는 슬프고도 강렬한 원념(怨念)이 지금도 남아있는 것은 아닐까?

이 역사적인 호프 다이아몬드는 현재 워싱턴의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으며, 높이 12.05m/m, 길이 25.6m/m, 폭 221.9m/m로서 거들 상부의 높이가 2.7m/m, 거들 하부의 깊이가 11.3m/m이며, 커트는 비대칭형의 58면에 거들과 메인 퍼빌리언면의 선단과의 사이에 2개의 패싯이 추가되어 있고 거들에도 패싯이 추가되어 있다.

출처-  한국보석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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